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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본래 국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공사’를 민영화하여 출범한 민간 항공사입니다. 우리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10월, 민간 자본에 의해 설립된 ‘대한국민항공사’가 항공 운송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나,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도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항공운송산업의 기반을 유지하고 항공교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1962년, 정부 출자를 바탕으로 한 국영 항공사 ‘대한항공공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국영 형태의 운영은 효율성과 수익성 면에서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경영 악화로 인해 만성적인 적자가 지속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국가 경제의 고도성장과 함께 민간 자본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어, 항공산업의 중심을 민간 부문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는 항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69년 3월 1일, 당시 한진상사 대표였던 조중훈 회장이 대한항공공사의 경영권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대한항공이 민간기업으로 전환되던 당시의 규모는 매우 소규모에 불과하였습니다. 전체 임직원 수는 단 514명에 불과하였고, 보유하고 있던 항공기는 제트기 1대와 프로펠러기 7대뿐이었습니다. 국제선의 경우 일본의 세 개 도시만을 운항하고 있었을 정도로 제한적인 운영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한항공공사는 1962년 6월 15일에 창립되어, 그 해 12월부터 국내선 정기편 운항을 시작하였으며, 1964년 3월에는 한국 최초의 한일 간 정기 여객 노선인 서울∼오사카 노선에 취항하였습니다(F27 항공기, 주 3회 운항). 이후 1969년 3월, 민영화를 통해 한진상사에 경영권이 인수되면서 납입 자본금 15억 47만 8천 원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민간항공사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 7월 ‘주식회사 대한항공’이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됩니다.
민영화 이후 대한항공은 공격적인 노선 확장과 첨단 장비 도입을 통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1969년 9월에는 서울·오사카·타이베이·홍콩·사이공·방콕 노선을 개설하였고, 1970년 5월에는 전자계산실을 발족하며 항공운송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1971년에는 김포공항 내에 격납고를 신축하였고, 같은 해 4월에는 서울·도쿄·앵커리지·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미주 화물 노선을 주 3회 정기 취항함으로써 한국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미주 노선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듬해인 1972년 4월에는 서울·도쿄·호놀룰루·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는 미주 여객 노선에 주 2회 정기 취항함으로써 본격적인 글로벌 여객운송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1973년 5월에는 세계 최대의 민간 여객기였던 보잉 747-200B 점보 제트기를 도입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한국 최초로 유럽 노선인 서울∼파리 구간에 화물기를 주 1회 정기 운항함으로써 유럽 항로에도 본격 진입하였습니다. 이후 1974년에는 제주 KAL호텔을 준공하고,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 호텔을 인수하였으며, IBM 컴퓨터를 도입하고 서울 서소문 소재 석탄공사 건물을 매입하는 등 전방위적인 사업 확장을 추진하였습니다.
1975년에는 서울∼파리 간 한국 최초의 유럽 정기 여객 노선 취항을 개시하였고, 이어서 컴퓨터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하여 서울 지역 국제선 좌석 예약 시스템을 전산화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8월에는 아시아 항공사 최초로 에어버스 A300B 제트 여객기를 도입하였습니다.
1976년 5월에는 서울∼바레인 노선을 개설하며 한국 최초의 중동 정기 여객편을 운항하게 되었고, 김포국제공항의 국제청사를 준공하여 정부에 기증하였으며, 12월에는 김해 창정비 공장을 완공하였습니다. 이어서 1977년 5월에는 항공기 제조사업 면허를 취득하였고, 1978년에는 한국항공기술연구소를 설립하여 항공 기술 자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1979년에는 국립항공대학을 인수하고 학교법인 ‘정석학원’을 설립하였으며, 종합연수원을 경기도 용인에 준공하여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서울∼뉴욕 간 정기 화물 및 여객 노선을 개설하여 북미 시장 진출을 확대하였습니다.
1980년대에도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꾸준히 확대해 나갔습니다. 1981년에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서부지역 최대 규모의 전문 화물 터미널을 건립하였고, 1982년에는 국산 전투기 1호기인 ‘제공호’를 출고하였습니다. 같은 해에는 서울∼부산 노선에 예약 없는 셔틀 서비스도 도입하였습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서울∼콸라룸푸르, 서울∼프랑크푸르트, 서울∼뉴욕, 제주∼타이베이 등 다양한 국제선 여객 및 화물 노선을 추가 개설하였고, 1987년에는 모의 비행훈련 장치(MD82 시뮬레이터)를 도입하여 조종사 훈련 체계를 강화하였습니다.
1988년에는 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를 준공하고, 프랑스 업체와 A330/A340 동체 부품 제작 계약을 체결하여 항공기 부품 수출을 본격화하였으며, 기초비행훈련원을 신설하여 인재 양성 기반도 마련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정식 가입하였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B747-400 시뮬레이터 도입, 전산센터 준공, 김포 케이터링 센터 증축 등을 통해 인프라와 기술력을 한층 더 강화하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러시아, 미국, 중국, 유럽, 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지에 지점을 설치하여 글로벌 영업망을 확장하였으며, 1995년부터 1996년 사이에는 아오모리, 워싱턴, 바젤, 난디, 브뤼셀, 텔아비브, 사이판, 마카오, 마드라스, 포틀랜드, 뉴어크 등에 지점을 개설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12월에는 국내 또 다른 주요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공식 편입하면서 대한민국 항공 산업 내 독보적인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